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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0 | 170 | 이 말을 들은 르와렌은 직접 전차 무전에 귀를 기울였고, 실제로 그가 배신의 지시를 듣자 허탈한 심정으로 병력 해산을 명령하고 사령부로 복귀했다. 곧이어 국방장관 노르베르는 르와렌에게 전화를 걸어 “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. 병력을 철수시키고 상황을 종결하라”는 명령을 내렸다. 그 직후 수도방위사 헌병단 부단장 신 위니에르 중령이 헌병대를 이끌고 르와렌과 함께 피신해 있던 육본 지휘부를 전원 체포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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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2 | 노던 소사이어티는 반란 초기에 루이나 대통령 앙리 쿠리아를 사실상 구금하다시피 했으며, 육군참모총장 앙드레 벨몽은 이미 반란군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, 당시 상황에서 정상적인 명령 체계를 유지한 채 반란 진압을 명령할 수 있는 인물은 오직 국방부 장관 알렉상드르 노르베르뿐이었다. 그 때문에 반란군도 진압군도 그의 행방을 찾으려 혈안이 되었고, 수도방위사령관 장 르와렌이 자의적으로 병력을 움직이려 할 때조차 육본 측에서 이를 만류한 이유 역시 “국방장관이 있어야 한다”는 것이었다. 그러나 노르베르는 정작 자신의 신변 보장을 위해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기만 했고, 그 사이 정상적인 명령 체계를 지키려던 진압군은 오히려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반란군의 기습적 행동에 끌려다니다 차례로 제압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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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4 | 결국 붙잡힌 노르베르는 상황을 눈치 보고 움직이며 벨몽 체포 동의안에 서명했고, 이어 쿠리아 대통령에게도 “옳지는 않지만 사태가 더 악화되어 군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”는 이유를 들어 서명을 부탁했다. 훗날 12·12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조차 노르베르는 이 사유를 변명하듯 직접 증언하였다. 결국 쿠리아는 벨몽 체포 동의안에 재가 서명을 했는데, 이때 서명 문건의 표지에는 재가 날짜와 시간이 명기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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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6 | 바로 이 점 때문에, 반란군이 아무리 강변해도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. 당시 노던 소사이어티가 벨몽을 체포한 것은 대통령의 재가 이후가 아니라, 명백히 '''‘선체포 후동의’'''라는 불법 절차였음이 명실상부하게 드러난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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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8 | '''이렇게 하여 작전 개시 약 10시간 만에 루이나 벨포르에서의 반란은 성공적으로 귀결되었다.'''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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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2 | 179 | == 반란의 성공 원인 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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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3 | 180 | === 군을 장악했던 사조직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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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74 | 181 | === 반란 당시 환경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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